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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신(新)시대에 사무라이가 지켜야 하는 것은?

 

 

원작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다뤘던 <바람의 검심>이 영화로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찾아왔다. 영화 <바람의 검심>은 일본의 대격동기였던 메이지 유신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고의 칼잡이 발도제(모든 발도술에 능통한 자)라고 불린 주인공 히무라 켄신(사토 타케루 분)이 ‘역날검’ 을 들고 다니며 불살(不殺)을 통해 속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新)시대는 되었지만, 사무라이 정신은 사라지고...

메이지 유신이 도래한 후,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일본은 점차 근대화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끝마다 신시대가 도래했다며 떠들썩해 하고 경찰은 “공포와 폭력이 지배하던 세상은 끝났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시대라고 누구에게나 다 좋은 세상이 온 것은 아니다. 예전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들은 생계를 잃었고,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무라이 정신’이 아니다. 그들 역시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의추구보다는 차라리 부의 권력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합리한 살인을 마구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재력가의 중심에는 무역상인 다케다 간류(카가와 테루유키 분)가 있다. 그는 아편을 제조해 부를 축적하는 전형적인 악덕업주다. 그는 이를 통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까지 꾸미고 있다. 그런 그를 경찰은 의심을 하지만, 그를 수사하려면 에도 시절에는 없던 영장이라는 것을 통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오히려 경찰은 간류가 고용한 사무라이 진에(킷카오 코지 분)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며 초라한 공권력의 현실마저 보여준다. 자본의 휘둘리는 사람들과 공권력 그리고 재력가까지. 마치 우리의 지금 언론을 보는 듯한 기분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들었다. 정치와 결합해 버린 하나의 권력인 언론. 원래 언론이란 비판과 감시가 주 업무이지만, 소위 '메이저'라고 불리는 거대언론은 그들의 소임을 잊은 것 같다. 물론 언론이라고 항상 '정의' 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원래' 는 그렇지 않았을텐데, 가끔씩 황당스러운 기사까지 읽게 되면, 분노보다는 슬픔이 밀려온다.

 

자신의 굳건한 신념을 보여주는 사무라이 켄신

주인공인 켄신은 한때는 유명한 살인귀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무라이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세상은 정의롭게 살려는 그를 온갖 유혹으로 가만 놔두지 않는다. 무기력한 경찰은 켄신에게 “육군의 요직에 앉혀 줄 테니 수사에 협조해 달라.” 고 요청하고, 간류는 “돈이 없으면 소고기 전골도 못 먹는다.” 라고 돈다발을 뿌리며 자신의 경호를 부탁한다. 자신에게 거저 굴러온 기회이자, 편안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기에 누구라도 고뇌에 빠질 법 하지만, 켄신은 살인은 저지르지 않겠다는 신념하에 단칼에 거절한다. 그의 신념이 유혹을 이겨낸 것이다.

오히려 그는 간류가 우물에 독을 타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에 가득 차 자신의 새로운 동료인 사가라 사노스케(아오키 무네타카 분)와 함께 간류를 잡겠다는 정의를 실현한다. 그리고 그는 싸움터에서 만난 간류의 경호원인 게인(아야노 고 분)에게 “그대도 신념을 가진 무사였을 텐데, 왜 간류에게 영혼을 팔았느냐.” 고 묻는다. 게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켄신 입장에서 보면 당황할 법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목소리가 담긴 저 말 한마디는 우리의 아픈 구석을 찌를 법하다. 또한 게인은 자신도 한때 사무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검 대신 총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에게 더 이상 사무라이의 신념이란 찾아볼 수 없다.

 

정의추구는 앞으로도 가능할까?

켄신은 진에와의 마지막 대결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그를 죽이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 오히려 부의 노예였던 진에는 오히려 자결을 하며 사무라이의 정신을 보여준다. 사무라이의 정신을 버린 진에였지만, 마지막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신념을 보여주며 그것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하는 사회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정과 굳은 신념으로 여러 가지를 시작하지만,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유혹에 무너지는 모습.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을 편하게 사는 것이 과연 좋은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새로운 '정의'로 정의가 되는 것인지. 이제는 헷갈릴 지경이다.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지만, 약간의 '정의'는 살아있는 세상이 유지됐으면 한다. 그게 작은 바람이다.

이번 영화가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니 켄신이 앞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지, 끝까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