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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페스티벌(JFF)③> 행복 목욕탕 | 엄마의 버킷리스트, 가족을 묻다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부모님에게 들은 옛 목욕탕은 정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명절처럼 중요한 날이 있어야 한번쯤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모이기만 하면 동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기 변변치 않았던 시절,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장소에서 목욕탕은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 목욕탕>은 가족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그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해주는 ‘뜨끈한’ 보금자리다. 일본어 원제는 <물을 끓일 정도의 뜨거운 사랑(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으로 한국에선 '행복'을 넣은 것이 눈길을 끈다.

영화 <행복 목욕탕> 스틸컷 ⓒ엔케이컨텐츠

영화는 '보통 가족'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슬픔, 비밀 그리고 행복을 넘치지 않게 골고루 담는다. 병으로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알게 된 후타바(미야자와 리에)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침착하다. 그리고 자신이 생애 꼭 해야 될 일을 하나씩 해나간다. 마치 버킷리스트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모습 같다. 사라졌던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를 찾아 목욕탕 영업 재개를 맡기고, 자신이 가진 비밀을 털어놓기 위해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와 긴 여행에 나선다.

죽음을 앞둔 후타바가 꿋꿋하게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대인배 같은 포용력과 가족을 향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강인한 정신이 있어 가능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즈미를 향해 “도망치지마”라고 말하거나 가즈히로가 바람피다 생긴 여자아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린 후타바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동시에 질문을 던진다.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법적 테두리에 묶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축하받는 결혼 뒤 이후 이혼과 거듭된 재혼, 부모와 자식 간의 결별 등 가족붕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혈연만큼 중요한 건 인연(人煙)’이 아닌가라고. 대인관계가 점점 얕아지고, ‘헤어지면 남’이라는 말이 있듯이 냉혹한 세상에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만남은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 연출이자 ‘차세대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불리는 나카로 료타 감독은 강인한 엄마의 존재를 줄곧 슬픈 시선으로 그린다. 캐릭터들의 연기는 작품 몰입도를 놓여준다. 외면과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미야자와, 절절한 슬픔을 보여주는 스기사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내 반응도 좋았다. 미야자와는 이번 달 초 열린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스기사키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우수작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