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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끄끄의 영화 펼쳐보기>고등학교 치어댄스부의 무한도전, 꿈에는 한계가 없다

2009년 인구 약 27만 명의 소도시 일본 후쿠이 시가 떠들썩해졌다. 현립 후쿠이 상업고등학교 치어 댄스부가 전미치어댄스선수권대회(NDA)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 이유다.

창단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이 이뤄낸 큰 성과였다. 치어 댄스부가 창단된 계기는 한 체육 교사의 강한 의지였다. 2004년 3월, 체육 교사 이가라시 유코는 가나가와 현립 아츠기 고등학교 치어 댄스부가 NDA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 후쿠이 상업고로 전근을 와 바통부 고문을 맡은 그는 바통부를 치어 댄스부로 바꾸려고 한다.

이가라시는 50년 전통의 바통부 졸업생들과 현역부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부원 50명 중 9명을 제외하고 바통부를 떠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가라시는 2년 뒤인 2006년 4월, 치어 댄스부를 창립했다. 제트기처럼 빠르게 성장하라는 의미에서 팀 이름은 제트(JETS)라고 지었다. 체육 교사였지만 치어 댄스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아츠기 고교에서 치어 댄스부를 가르친 마에다 치요씨를 코치로 영입했다. 마에다의 지도는 한 달에 한 번에 불과했지만, 부원들은 연습을 반복해 실력을 키워나갔다.

결국, 제트는 2008년 전 일본 치어 댄스 고등학교 부문에서 3위에 입상해 전미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미국으로 건너가 NDA 고교 팀 퍼포먼스 부문에서 예선과 결선을 거쳐 29개의 팀을 제치고 당당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후 2011년 또 한 번 우승한 제트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인터내셔널 팀 퍼포먼스 부문에서 5연패라는 대기록 하며 NDA에서 통산 7차례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이들의 '무한도전'이 성공 거뒀다.

전미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목표만큼이나 이가라시가 다소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치어 댄스부 창립에 힘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목표를 세우고 함께 이뤄 가는 과정에서 부원들이 내외적으로 성장하길 바란 것이다.

이가라시는 우선 부원들의 생활 태도를 크게 신경 썼다. 고시엔에 단골로 출전하는 학교 야구부의 행동을 참고삼았다. 연습도구나 체육관 등 장소 이용에 항상 감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철저한 규칙준수를 강조했다.

또한, 부원들에게 '꿈 노트'를 쓰게 해 각자 자신들의 목표를 쓰게 했다. 목표를 쓰게 한 뒤 계속해서 연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가라시는 "고등학생이 되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버릇이 생긴다. 꿈에 한계를 갖지 않기 위해 '꿈 노트'를 쓰게 했다"며 "사회에 나왔을 때 지금의 경험을 뿌리에 두고 자신감을 가지고 자립하는 한 여성으로 성장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에다는 "이가라시 선생님의 '꿈을 크게 가져라'라는 믿음이 학생들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우승한 멤버들이 원래 (치어 댄스의)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두 초보자였다. 그러나 어떤 아이라도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트 멤버인 이 학교 3학년생 고토 유카리는 "노는 건 졸업 후에도 할 수 있지만, 모두와 치어 댄스에 전념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제트 졸업생 중 일부는 현역 부원들과 지속적인 교류도 하고 있다.

제트의 탄생과 부원들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 <치어 댄스>가 지난 21일 국내에 개봉했다. 제트의 고문 카오루코 역으로 출연한 아마미 유키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부분은 아쉽다. 그러나 처음에는 좌충우돌하던 부원들이 갈등을 이겨내고 하나로 뭉치는 과정은 누구쯤은 학창시절 한 번쯤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영화 중간중간과 대미를 장식하는 치어 댄스 장면은 배우들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연 히로세 스즈 등 신진 배우들이 대거 이 작품에 출연한다는 점은 초보자들이 꿈을 이뤄간다는 영화 내용과 비슷해 공감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