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읽기

<김끄끄의 일드 읽기> 츠바키 문구점 ~가마쿠라 대서사 이야기

mediasoo 2017. 6. 4. 05:30

손편지 대신 써주는 문구점, 정겹고 고요하다

스마트폰 메신저, 전자우편(e-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전으로 점점 편지는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전국 우체국은 3518곳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158곳 줄었다. 2015년 우표 판매량은 1만 9664장으로 역시 10년 전인 2005년의 4만 7690장보다 2만 8026장이나 줄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서로 메시지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휘발성, 단문 메시지가 증가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 일본 NHK의 올해 2분기 드라마 <츠바키 문구점 ~가마쿠라 대서사 이야기>는 눈길을 끈다. 손편지를 소재로,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은 주인공인 아메미야 하토코(타베 미카코)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대를 이어 츠바키 문구점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문구점을 운영하지만 주 업무는 대서사로서, 의뢰받은 편지를 대신 써주는 역할이다. 다시 말해, 대필업이다. 조문 편지, 자신의 이혼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편지, 첫사랑에게 보내는 편지, 친구와의 절연장, 시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등 하토코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청을 의뢰받아 편지에 담는다.

눈여겨볼 것은 하토코가 편지를 쓰는 과정이다. 하토코는 편지 한 장을 쓰기 위해, 의뢰인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꼼꼼하게 그의 과거를 물어본다. 며칠이 걸려도 의뢰인의 관련 사진이나 자료도 하나하나 체크한다. 편지로 인해 의뢰인과 수신인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지도 깊숙이 고민한다. 그렇게 최대한 많은 정보와 상황들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편지를 쓴다. "한 통의 편지가,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 그것이 대서사의 마음가짐" 등의 신념을 가지고 일에 집중한다. 편지 내용이나 의뢰인 및 수신인의 상황에 맞춰 글씨체와 편지지, 잉크 색깔까지 정하는 모습에선 손편지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가령, 중후하면서 카리스마가 있는 남작이 부탁한 편지엔 붓 대신 만년필을 쓰고, 절연장은 잘 찢어지거나 불타지 않는 양피지를 이용한다. 이혼을 알리는 편지엔 두 사람이 결혼했을 시절의 우표를 사용한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보낸 편지지를 꽃잎으로 장식하는 장면은 그저 아름답다. 이런 느리면서도 꼼꼼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서사를 거친 편지는 대필임에도 의뢰인의 진심과 정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게 된다. 최근 사회 문제로 부각된 몇만 원에서 최고 몇 백만 원까지 이르는 자기소개서 대필 사설 업체와는 확연히 성격이 다르다.

가마쿠라시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작품 내내 정겹고 조용한 분위기를 낸다. 실제 가마쿠라시는 몇몇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아기자기하면서도 정적인 분위기를 많이 보여준 곳이다. 글마저도 빨리 나오고 금방 소비되는 현실에서, 급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는 편지가 쓰여지는 곳이 가마쿠라시라는 점은 드라마지만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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