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끄끄의 일드 읽기> 스케이프고트 | 진짜 리더의 덕목을 비추다
경제·금융 전문가로 평소 정부에 날카로운 비판을 해 국민들에 명성을 얻은 경제학 교수 미사키 코우코(쿠로키 히토미)는 당의 정책입안 연구회 의장을 맡아달라는 명정당 총재 야마시로 타이조(후루야 잇코)의 요청을 받는다. 마사키가 고민을 하는 사이, 야마시로는 언론에 마사키가 수락했다는 소식을 흘린다. 마사키는 고심 끝에 연구회 의장을 맡는다. 중의원 선거에서 명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해 정권 탈환에 성공한 뒤 미사키는 내각의 특명담당대신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다.
일본 WOWOW 채널에서 2015년 방영한 <스케이프고트>는 코우다 마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정치드라마다. 정치적 희생양을 뜻하는 스케이프고트의 역할에 그칠 수 있었던 미사키가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총리직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그렸다.
작품은 미사키가 보수적인 남성들이 득실한 정치판에서 활약하는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 일본은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3월 국제의원연맹(IPU)이 발표한 <여성의 의회 진출 비율>을 보면 일본의 여성의원 비율(중의원 기준)은 9.3%로 조사한 193개국 중 164위에 그쳐 한국(116위, 17%)보다 낮았다. 여성 총리는 한차례도 배출된 적이 없다.
여성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의 기반이 되는 건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사키의 힘이다. 금융담당을 맡은 뒤 터진 지방은행 파산 위기 앞에선 역량과 경험, 개인 네트워크를 총 동원, 구제책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막아낸다. 총리에겐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과반수로 승리하면 자신에게 사회보장과 재정의 일체개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당 총재가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입한 미사키는 점점 정치계의 중심이 돼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 나간다.
갓 정치에 입문한 미사키가 순식간에 장관에 오른 뒤 총리 자리까지 도전한다는 빠른 드라마의 전개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게 다가오지만, 그가 진심을 내세운 정책을 펼쳐나가는 모습에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지방은행 파산 위기 때 당의 지지율 하락을 걱정하는 부총리를 향해 "그런 실없는 불만을 듣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를 뽑아야 하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리더의 의미와 역할을 돌아보는 이 드라마는 더욱 현실감이 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제대로 된 리더의 역할을 보기는커녕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만큼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희열과 씁쓸함을 동시에 남긴다.
"미래경제의 암울과 저출산·고령화 등 어떤 분야도 낭떠러지인데 역대 정부는 해결책도 못 내놓았다. 지금 우리들이 진심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이 나라는 정말로 침몰할 거다"라고 총리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미사키 같은 리더를 다가올 새 정부에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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