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읽기

언뜻 보면 막장, 알고 보면 ‘정체성’에 관한 일드 <소중한 것은 모두 네가 가르쳐줬어>

mediasoo 2012. 12. 27. 14:32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당신이 연인이라면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2011년 1월17일부터 3월28일까지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한 <소중한 것은 모두 네가 가르쳐줬어>는 앞서 질문한 것의 답을 시청자들에게 제시한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연인간의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완벽한 실수였다.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랑은 달달할 수만은 없다. 사랑이란 것은 알고 보면 매우 쓰디쓴 존재다.

침대 위에 있는 사에키 (위), 아래는 당황한 모습의 슈지

 

교사와의 하룻밤...그리고 복수를 꿈꾼다?

이 드라마는 언뜻 보면 ‘막장’ 드라마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고등학교에서 인기 많은 교사인 카시와기 슈지(미우라 하루마 분)는 같은 학교 교사 우에무라 나츠미(토다 에리카 분)와 결혼을 약속한 연인 사이다. 이야기는 슈지가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니 웬 낯선 여자가 자기 침대위에 함께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 여자는 바로 슈지가 새 학기부터 담당할 자기 반의 학생 사에키 히라키(타케이 에미 분)이다. 물론 슈지에게 전날 밤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다.

여고생과 남교사가 하룻밤을 보냈다는 설정부터 심상치 않다. 또한 제자의 몸을 범했다고 자책하는 슈지의 모습과 마치 이를 복수하기 위해 “선생님을 뺏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거야 ”라며 그를 살짝 협박하는 사에키의 드라마 초반부의 모습은 학생과 교사라는 입장을 고려할 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츠미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슈지네 집에서 슈지, 나츠미, 사에키가 ‘3자 대면’을 하는 모습도 약간 어설픈 설정처럼 보인다. 심지어 나중에 나츠미는 이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쉽게 슈지를 용서한다. 드라마 초반부터 곳곳에서 펼쳐지는 이런 요소들은 초반 흥미를 살짝 떨어뜨린다.

 

사에키의 흔한 복수극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주인공들의 키워드...‘정체성’

하지만 드라마는 전개 될수록 ‘정체성’ 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슈지, 사에키의 과거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에서 둘째였지만, 집안의 기둥이었던 슈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 그리고 사고뭉치였던  형의 모습을 보고 자신은 모든 일에 대해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결국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반면 예전부터 슈지를 좋아했던 사에키는 4년 전, 교통사고에서 죽은 언니의 그림자에 늘 가려져 있었다. 똑똑하고 예뻤던 언니에 비해 특별히 잘난 것이 없었던 사에키는 4년 전 교통사고에서 부모님이 언니가 아닌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고 얼굴표정이 잠시 일그러진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자신은 병에 걸려 있어 약을 먹지 못하면 여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는 상황까지 처해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고 외로워하던 그녀는 예전 언니의 모습과 행동을 따라 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지만 결국 그런 것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는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우리는 일상속에서 상대방이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매우 많으며, 상대방이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알고 이해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사라는 직업...복잡한 전개의 결말은?

사실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복잡하게 전개된다. 우연히 슈지와 사에키의 사건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면서 슈지와 나츠미와의 결혼은 결국 취소되고, 슈지는 6개월 동안 근신 조치까지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6개월 후에 돌아온 학교에서 그는 나츠미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 주인공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속에서 결말은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슈지와 나츠미의 재결합, 혹은 슈지와 사에키의 새로운 결합은 이뤄지는 듯하면서도 시청자들과의 '밀당'을 통해 최종회까지 시청자들이 예측할 수 없도록 한다. 최종회에 이러서야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무엇이 소중했는지 알 수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교사와 제자의 설정으로로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교사이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사건들에 민감하고 파급력이 크다. 특히 학부모들의 눈에서 피해갈 수 없는 직업이다.  그런 이유로 슈지와 나츠미가 심적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교사 역시 일반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똑같으며, 이런 좋지 않았던 사건들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교육적 요소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22살의 미우라 하루마...교사역으로?

이 드라마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배우는 타케이 에미였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유다. 그녀는 1993년생으로 당시 드라마를 찍었던 나이가 19세였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의 역할은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그녀는 살짝 툭 건들이기만 해도 울 것만 같은 어두운 모습을 잘 소화해냈다.

블로그 <느리게 걷기>에서 약 1,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2012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부문에서 1위에 올랐던 토다 에리카는 드라마 초반에는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내면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초반에는 그녀는 강한 이미지로 나오지만, 후반부는 차분하게 펼쳐나간다.

이 드라마에서 교사 역을 맡았던 미우라 하루마는 드라마 촬영 당시, 나이가 고작 22살이었다. 학생으로 나오는 타케이 에미와는 실제 나이차는 3살. 하지만 그의 나이에 비해 성숙해보이는 외모 때문이지,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교사로서, 연인으로서는 말이다. (토다 에리카가 미우라 하루마 보다 2살 연상이다.) 영화 <너에게 닿기를 (2010)> 에서는 고등학생 역할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번 교사역은 더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한국이었다면 방영될 수 있었을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든 것이 있었다. ‘과연 한국이었다면 이 드라마 방영될 수 있었을까’ 였다. 여고생과 교사와의 잠자리를 가진 장면, 교사가 미혼모로 나오는 장면, 그리고 학교에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모습을 이해하는 장면까지 말이다.

2011년에 서울시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가 생각났다. 이런 드라마가 방영됐다면, 일부 학부모단체가 엄청난 항의를 않았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예상을 해 본다. 동성애와 비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동성애를 다뤘던 드라마가 방영됐을 당시, 엄청난 항의가 빗발쳤던  과거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나?